책을 아주 귀엽게 실용적으로 써먹어서 덕 본 일도 있다. <파브르 평전>의 이 문장을 들어보라. 이 문장을 써먹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나는 그날 저녁을 산누에나방의 저녁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나방은 흰 모피 목도릴 두르고 밤색 비로드 옷을 입은 것 같은 생김새다. 5월 6일 아침, 암컷 나방이 서재의 책상 위에서 번데기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나방을 종 모양의 철망으로 덮는다. 저녁 아홉 시경에 내 아들 폴의 방에서 쿵쾅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아들 폴이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빨리 오세요. 새처럼 큰 나방들 좀 보세요. 제 방 전체가 나방들로 가득 찼어요. 나는 급히 건너가서 녀석이 흥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들의 흥분이 이해가 된다. 거대한 나방들이 우리 집에 침입한 것이다. 거기서 본 것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커다란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커다란 나방들이 철망 주위를 맴돈다. 어떤 놈은 우리 어깨에 내려앉고 어떤 놈은 우리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사랑에 빠진 산누에나방들이 사방에서 날아든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아침에 내 서재에서 태어나 결혼 적령기가 된 암컷에게 사랑을 다짐하러 온 것이다. 그다음 주까지 매일 저녁 나방들이 날아들었다. 나방들은 성숙하면 짝짓기를 위해서만 산다. 성숙한 나방들은 입이 구부러져 결코 먹이를 먹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곧 지쳐버린다. 이틀 내지 사흘 저녁의 몇 시간 동안만 짝을 찾아 사랑의 축제를 벌이는 것이 수컷에게 허용되어 있다. 삶의 환상과 수고가 모두 끝나는 순간이다. 사로잡힌 암컷은 철망 속에서 여드레를 살았다. 그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수컷 150마리 가량을 유인했다. 수컷들은 먼 곳에서 와야 했다.

나는 이 긴 글을 한 남자에게 인용하고 딱 한 마디만 덧붙였었다."나방만도 못하진 않겠지?" 물론 나를 더 사랑해달라는 뜻이었다. 아주 멀리서도 나임을 금방 알아보고 달려와 달라는 뜻이었다.

::: 정혜윤, '침대와 책(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에서 :::


한참을 재밌게 읽다가, 저 문장에서 풉 웃었다.
그러다 곧바로 든 생각.. '설마, 못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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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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