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이었나.
한국경제신문(이하 한경)에서 크게 한 방을 때렸다. SKY(서울대,연대,고대)의 경영전문대학원(MBA) 순위에서 연세대가 당당히 꼴찌를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는 그 시절, 우리 동기들의 극심한 분노 속에 최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아, 오해하지 말라. 우리는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화난 것이 아니라, 그 기사가 그렇게 걸러지지 않고 나가 버리게 한 우리 학교 홍보실에 대해서 화가 났던 것이니까..
학교를 통해 들어온 인터뷰 요청을 승낙하고 나간 자리에서, 그 기사를 썼던 (지금 찾아보니 검색이 되지 않는다) 성선화 기자를 만났다. 한경 교육부에서 2006년부터 근무했던, 그간 교육계에서 굵직굵직한 기사를 많이 썼던 성기자는 블로그의 사진과는 달리 매우 야리야리한 이미지의 여인이었다. 약 2시간에 걸쳐서 진행됐던 인터뷰는, 한국형MBA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인 성기자의 여러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형태로 진행이 되었고, 매우 날카로운 질문에 꽤나 고심하며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인터뷰를 통해, 공대생 출신으로 제조업 생산관리직무를 거쳐 한국형MBA를 마치고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되기까지의 내 여정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순탄하다면 너무나 순탄하고, 꼬였다면 너무나 꼬인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의 마지막은, 일명 인터뷰용 포즈를 취하라는 요구에 너무나 어색한 나의 모습을 무려 20장 이상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인터뷰를 마치고 여의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시작된 MBA동기와의 술자리는, 그간의 내 고민을 모두 털어버리려는 듯이 "아주머니, 시원한 소주 한 병 주세요."란 나의 외침으로 시작이 되었다.
MBA를 하는 1년 동안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
"사람은 자기 손에 쥐고 있는 떡이 얼마나 큰 줄 몰라.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곤 하지. 그러다가 막상 남의 떡을 집으려 내 손에 쥔 떡을 놓는 순간, 그게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되는 거야. 아이러니하지 않냐? 막상 놓아야 할 때가 되어야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게 된다는 사실이 말야. 근데 더 재미있는 건, 그걸 한 번 놓아본 자는 아무리 자기 손의 떡이 크다는 걸 알게 되어도, 새로운 것을 위해서 그 떡을 놓아버리는데 주저하지 않게 된다는 거야. 그게 바로 변화를 느껴본 자가 도전을 즐기게 되는 원리이지. 나는 그래서 MBA에 지원을 했어. 내 손의 떡을 한 번 놓아본 적이 있거든."
술에 취할 때마다 친구들에게 넋두리하듯이 늘어놓던 이 이야기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다잡아주던 근간이었다. 훗날 내가 실패할 지라도, 나는 변화를 꿈꿨던 사람이고, 도전했던 사람이라는 반증으로, 나에게 위로가 되어줄 테니까
이제야 돌이켜 보니 나는 참 순탄치 않게 살고 싶었던 것 같다.
공대생으로서 꿈꾸지 말았어야 할 기획직을 꿈꿨고,
오랜 노력 끝에 그 기회를 얻어내었으나 정보 부재로 원하지 않았던 지방근무를 시작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예정되어 있던 기획직이 아닌 생산관리직을 맡게 되었고,
안타깝게도 해당 직무가 적성에 맡지 않아 2년간을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괴로워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을 받고 싶어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그 덕에 업무능력을 인정받고, 손에 익은 숙달된 업무를 하면서 편하게 근무할 수 있었음에도 매너리즘을 느껴서 힘들어했으며,
다시 한 번 꿈을 이루고자 총괄 기획직에 재도전하였고,
기획팀 부장님과 상무님의 예상치 못했던 환대 속에 부서 이동이 확정되었으나
하필 전배 며칠 전에 발효된 부사장님의 인력동결지시로 인해 부서 간 전배가 불가능해져서,
결국 그 꿈이 좌절되어 버린 나는, 시대의 비운아였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때(opportunity)와 운(luck)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 때 절실히 깨달았다. 결국 해외MBA로의 지원을 포기하고, 금융권이나 Consulting업으로의 이직을 위해 국내MBA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삼성을 떠난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큰 도전이자,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1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던 즈음에, 증권사 리서치 센터 중 내가 바라보던 단 한 곳(3대 리서치센터이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섹터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던 곳)에서 경력직 모집이 나온 것은, 나에겐 큰 기회였고 하늘의 도우심이었다.
지난 날, 정보력 부재로 인해 내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이 너무도 컸기에, '이번만큼은 절대 실수하지 말자'하고 다짐하며 준비하고 또 준비한 결과 이 자리에 들어올 수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꿈꿔왔던 최상위권에 근접한 모습이기에 지금의 행운이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그렇기에 나는 내 주변사람들에게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하고 떳떳이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인생에 기회는 3번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 왔던 첫번째 기회는 삼성 기획직이었고, 나는 당당히 실력으로 그 기회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했다. 이후 그 기회는 나의 오만과 정보력 부재로 독이 되어 돌아왔다. 나의 두번째 기회는, 와신상담을 통해 그 독을 나의 힘으로 바꾼 이후에 찾아왔던 현 직장이었고, 이번 기회는 운 좋게 움켜쥐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세번째 기회는 조만간 혹은 먼 훗날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리라.
지금까지 꽤나 치열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는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겠지만, 잠자리에 누울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사실은 평범하고 조금은 어리한 사람이고 싶었던게 아닐까
'욕심 없는 자는 행복하다.'는 말처럼, 이젠 조금은 욕심을 덜 부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나도 때론 바보이고 싶다.
욕심 부리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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