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기다린다.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시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 조병준의《따뜻한 슬픔》중에서 -
네.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결과가 드러날 시간 또한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돌아보았습니다.
시간과 시간, 말과 말, 글과 글, 행동과 행동, 그리고 기억과 기억.
그 사이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소소하고 세세한 사실들.
나는 굳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정말 중요한 사실을 무시하려 애쓴 것은 아니었을까
나와 너무나 비슷한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은 나의 그것과 비슷하고,
그 사람이 걸어갈 길 또한 나의 그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분명 비슷한 길인데,
막상 그 길의 시작에 서 있었던 나에게 내가 해 준 이야기는
또다른 그 길의 시작에 서 있었던 그에게 내가 해 준 이야기와 다릅니다.
같은 길의 시작에 서 있었던 나에게 그가 해 준 이야기는
그 길의 시작에 서 있었던 그에게 그가 해 준 이야기와 다릅니다.
신기하게도,
그 길의 시작에 있던 나에게 내가 해 준 이야기는
그 길의 시작에 있던 그에게 그가 해 준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 길의 시작에 있던 나에게 그가 해 준 이야기는
그 길의 시작에 있던 그에게 내가 해 준 이야기와 같습니다.
단지, 그 길의 시작에 서 있던 시간이 달랐을 뿐인데
우리는 각자에게 그렇게나 다른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보호본능이라는, 인간으로서는 아주 당연한 본성을 가진 우리들은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때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관이란 녀석으로 객관이란 녀석을 사뿐히 물리쳐 버립니다.
다른 이에게 이야기할 때는 너무나 당연스럽게, 혹은 타인의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객관이란 녀석으로 주관이란 녀석을 사뿐히 물리쳐 버립니다.
아니, 주관이란 녀석은 아예 존재치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저와 닮은 어떤 사람과 저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이야기는 꼭 내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 머릿속에서만 어지러이 돌아다니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차분히 정리해 봅니다.
그럼으로써 제 마음과 제 결정에 확신을 가집니다.
이제 그 기다림의 끝이 다가옵니다.
어떤 결과를 가지고 제게 다가올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제가 원하는 결과일 수도, 아니면 정반대일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던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미친듯이 기뻐하거나 혹은 슬퍼할지도 모르지만요.
사실은 기다림 그 자체가 저에게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제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기다림을 선물해 준 어떤 이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합니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
기다린다.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시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 조병준의《따뜻한 슬픔》중에서 -
네.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결과가 드러날 시간 또한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돌아보았습니다.
시간과 시간, 말과 말, 글과 글, 행동과 행동, 그리고 기억과 기억.
그 사이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소소하고 세세한 사실들.
나는 굳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정말 중요한 사실을 무시하려 애쓴 것은 아니었을까
나와 너무나 비슷한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은 나의 그것과 비슷하고,
그 사람이 걸어갈 길 또한 나의 그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분명 비슷한 길인데,
막상 그 길의 시작에 서 있었던 나에게 내가 해 준 이야기는
또다른 그 길의 시작에 서 있었던 그에게 내가 해 준 이야기와 다릅니다.
같은 길의 시작에 서 있었던 나에게 그가 해 준 이야기는
그 길의 시작에 서 있었던 그에게 그가 해 준 이야기와 다릅니다.
신기하게도,
그 길의 시작에 있던 나에게 내가 해 준 이야기는
그 길의 시작에 있던 그에게 그가 해 준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 길의 시작에 있던 나에게 그가 해 준 이야기는
그 길의 시작에 있던 그에게 내가 해 준 이야기와 같습니다.
단지, 그 길의 시작에 서 있던 시간이 달랐을 뿐인데
우리는 각자에게 그렇게나 다른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보호본능이라는, 인간으로서는 아주 당연한 본성을 가진 우리들은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때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관이란 녀석으로 객관이란 녀석을 사뿐히 물리쳐 버립니다.
다른 이에게 이야기할 때는 너무나 당연스럽게, 혹은 타인의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객관이란 녀석으로 주관이란 녀석을 사뿐히 물리쳐 버립니다.
아니, 주관이란 녀석은 아예 존재치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저와 닮은 어떤 사람과 저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이야기는 꼭 내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 머릿속에서만 어지러이 돌아다니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차분히 정리해 봅니다.
그럼으로써 제 마음과 제 결정에 확신을 가집니다.
이제 그 기다림의 끝이 다가옵니다.
어떤 결과를 가지고 제게 다가올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제가 원하는 결과일 수도, 아니면 정반대일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던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미친듯이 기뻐하거나 혹은 슬퍼할지도 모르지만요.
사실은 기다림 그 자체가 저에게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제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기다림을 선물해 준 어떤 이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합니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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